하정우는 나아간다, 그림·연기 두바퀴로
지난 13일부터 1주일간 열린 ‘싱가포르 아트위크’에 전세계 예술가와 컬렉터의 발길이 몰렸다. 그 인파 속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충무로 대세’ 하정우(36)였다. 그는 아시아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는 행사 ‘프루덴셜 아이 어워즈’에 홍보대사로 참석했다.
하정우의 그림도 전시장 한 켠을 장식했다. 그 역시 2010년부터 개인전을 5차례나 열며 활동 중인 ‘뜨는 작가’다. 최고의 배우이면서 미술계에도 나름의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지만 처음에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신진 작가들을 격려하는 행사인 만큼 나서기 꺼리는 눈치였다. 한국 작가들을 축하해 주던 그가 행사가 파하자 서둘러 자리를 뜨는 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에스컬레이터를 탄 그를 불렀다. 뜻밖에도 에스컬레이터를 몇 발짝 오르며 맞아주더니, “2월에 개인전을 두 개나 한다”며 숙소까지 가는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7월 개봉하는 ‘군도’ 이전에는 일체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만났으니 뭐든 다 답해주겠다”고 했다.
- 드로잉 실력이 좋은데 그림을 배운 적 없다는 게 정말인가.
“그림을 드로잉으로 그린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다. 어쩌면 그 작업이 내겐 힐링이 될 수도 있고 영화에 더 정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련일 수도 있는 거다.”
- 색감이나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
“시각적 센스를 뽐내려는 작업은 아니다. 그림은 무의식의 표현이랄까 일기장 같은 거다. 예술혼 까진 모르겠지만 그림 그리는 작업은 내겐 그런 시간이다.”
- 전시를 꽤 자주 하는 것 같다.
“개인전은 2년 만이다. 2년간 그린 신작을 청담동 까르티에 메종과 남산 표갤러리에서 공개한다. ”
- 작년 뉴욕 전시는 완판됐다. 스타라서 과대평가 받는 것 아닌가.
“인지도 때문에 더 관심을 받는 면이 있다. 하지만 누구든 꾸준히 진실하게 작업을 해나가면 언젠간 그 마음이 통해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는 2010년 에세이집 『하정우, 느낌있다』를 펴낸 바 있다. 어떤 배역이든 쉽게 몰입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철저한 계산과 연구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그는 ‘쌀로 밥을 짓는 게 연기라면, 술을 빚는 게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연기할 때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를 그림으로 해소하고, 그림과 연기를 두 바퀴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며 ‘그림은 연기만큼 절대적인 것’이라 했다.
- 고독하고 예민한 예술가 이미지와 하정우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당시의 그림에는 왜 고독이 묻어날까.
“내 외로움과 고독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나. 배우라는 직업이 자기 성격대로 다 드러내놓고 살 수 있을까?”
-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내 그림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 연기를 더 깊고 풍부하게 보기 위한 하나의 매뉴얼일 수도 있다.내 무의식의 단면이기에 때에 따라 외로운 그림도, 장난스런 그림도 나오는 것 같다.”
- 첫 감독 겸 주연 작품으로 ‘허삼관매혈기’를 택한 그 이유는.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재미있었다. 겉으로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을 내뱉곤 하지만 마음은 굉장히 따뜻한, 그런 양면적인 캐릭터가 재미있다. 중국 작가 위화의 문체도 코믹하고.그 두 가지만으로도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싱가포르 아트위크=아시아태평양 지역 ‘문화 허브’를 겨냥하는 싱가포르가 매년 1월 한 주를 지정한 미술주간. 아시아의 대표적인 아트페어로 정착된 아트스테이지2014, 동남아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싱가포르 비엔날레, 신생예술지구 길먼 배럭스의 현대미술전 등 다양한 미술행사가 13일부터 19일까지 곳곳에서 열렸다.
유주현 객원기자